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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 비도크, 괴도신사 뤼팽의 실존 모델
나폴레옹의 유럽전쟁 시기의 범죄자, 탐정, 바람둥이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20/10/21 [09:21]

[김영수 잡학여행] = 범죄자를 색출하기 위해 파리의 한 선술집에 들어선 사내가 크게 외친다.
“나는 비도크(Vidocq)다”
그러자 선술집의 모든 사내들이 술잔을 내려놓고, 사내의 말을 듣더니, 구석진 곳을 가리켰다. 선술집에 들어 온 사내가 찾던 범죄집단(요즘식으로는 조폭)이 거기에 있었다.

 

▲ 영화 ‘비도크’의 한 장면.     © 경기도민뉴스



흔히 비도크에 대해 얘기할 때 인용되는 에피소드 중 하나로 당시 파리경찰서장은 경찰관 1000명을 동원하려했지만, 책임자 비도크는 수갑을 가득채운 가방과 경찰관 8명만을 데리고 이 일을 해냈다고 한다.


비도크가 활동하던 프랑스는 대혁명(1789) 대프랑스동맹전쟁(1차 1792~1797, 2차 1798~1802), 나폴레옹의 유럽전쟁(1815년 워털루 패전)으로 이어지던 대혼란기였다.

 

◇ 10년동안 50회 탈옥했던 성공(?)한 범죄자
외젠프랑수아 비도크(Eugène-François Vidocq, 1775. 7.24~1857. 5.11)는 악명높은 전과자로 여러 번 감옥에 갇혔지만, 연이은 탈옥과 기발한 변장술로 경찰의 체포망을 빠져나갔다.


인생 자체가 드라마여서 작가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범죄자 ‘장 발장’과 평생 그를 뒤 쫓는 ‘형사 자베르’가 모두 비도크라는 실존인물을 모델로 삼은 것이다.


비도크의 범죄자이면서 탐정(경찰)이기도 한 역설적인 역할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프랑스의 작가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팽> 시리즈다.


기록이 제대로 남아있지는 않지만, 전해지기로는 비도크는 군대를 제대하고는 고향에서 상점을 차려 평범한 삶을 꾸려나갔다. 그러나 정식으로 제대명령이 없었다는 이유로 탈영병으로 몰려 체포됐다. 형무소에서는 위조지폐범이 자신들의 죄를 비도크에게 뒤집어씌웠다.


비도크는 억울함에 10여년간 탈옥을 계속 시도(무려 50여회 성공?)했고, 경찰에 다시 체포되는 과정이 반복됐다. 탈옥 이후 쫓기는 상태에서 도주와 생존을 위해 소소한(또는 중대한) 범법행위를 해나가던 비도크는 도둑이나 사기꾼의 버릇과 습성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었다.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변장도 필수적이었는데, 탐정이 첩보를 수집하고 범죄자의 비밀을 캐기 위해 미행ㆍ잠입할 때 필수적이었던 이 변장술은 셜록홈즈와 뤼팽 시리즈에도 자주 등장한다.


결국 붙잡힌 비도크에게 경찰서장은 파리에 원정 온 절도범을 잡는 데 협조하면 풀어 주겠다는 타협안을 제시한다. 도피생활에 지친 비도크는 제안을 받아들여 경찰의 끄나풀 노릇을 하며 범죄조직 일망타진에 공을 세운다. 또 다른 설은 굶주린 자식을 위해 먹을 것을 훔친 농부가 6년 징역을 당하는 것을 보고 개과천선했다고도 한다.


◇ 형무소에서 범죄자 프로파일링 완성한 듯
경찰서장의 제안을 받아들여 범죄조직을 일망타진하고, 일종의 면죄부를 받아 가게(의류였다고 한다)를 꾸리며 생활하던 비도크에게 예전에 알던 범죄자들이 나타난다.


예전 지폐위조 누명을 씌웠던 범죄자들은 비도크가 탈옥수라는 것을 주변에 알리겠다고 위협했다. 비도크는 끊임없는 협박을 받느니, 차라리 형무소로 들어가는 길을 택하고, 경찰서장과는 형무소 안에서 스파이 노릇을 하겠다고 제의했다.


1년9개월 동안의 옥살이에서 비도크는 범죄자 집단의 범죄정보를 빼돌려, 미제사건을 해결하고 범죄모의를 미리 분쇄하기도 했다. 형무소 안에서 범죄자들이 하는 얘기라고는 허풍이 섞인 자기자랑 또는 주워들은 뒷골목이야기일터. 비도크는 “사실은 그때 귀금속 전문점 주인 살인사건의 진범은 뒷골목 애꾸였어” “파리 시내 대부호는 아내 몰래 3명의 정부를 두고 있어. 이번에 나가면 그걸로 한몫 잡자구” 등의 떠도는 얘기들을 나름대로 분석하고 체계화했던 듯 하다.


형무소 안에서 떠도는 얘기들이 실제 범죄정보인지를 판단하려면, 수많은 데이터(떠도는 얘기)를 교차검증하고, 확실하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에야 경찰에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탈옥기간 동안 몸으로 익힌 다양한 범법행위가 도움이 됐으리라. 또 어지러운 데이터를 분석하고 정리할 수 있는 천성적으로 명석한 두뇌도 받쳐줬으리라.

 

▲ 영화 ‘비도크’의 포스터(감독 장 프랑소와 리셰, 2018년 12월19일).     © 경기도민뉴스

 

◇ 범죄에서 독창력이란 있을 수 없다
비도크의 활약으로 파리의 범죄자 체포 건수가 급증하며 치안도 안정되자, 경찰은 비도크를 경찰 전속탐정으로 임명한다. 비슷하면서 더 파격적인 사례로 영국은 아예 해적왕(드레이크)을 해군제독에 임명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했다.


비도크는 범인(지명수배자)을 체포하면서 받는 짭짤한 현상금으로 안정적 생활기반을 잡아나간다. 체계적인 조직을 만들기로 마음먹은 비도크는 개과천선 전과자를 중심으로 경찰에 협조하는 사설 범죄수사 집단 ‘쉬르테’를 창설(1812)한다. 쉬르테의 주요 구성원은 개관천선 전과자였고, 한때 300명까지(1820) 늘어났다.
이때 파리의 범죄율이 40%나 줄어들었다고 하는데, 직업적 안정을 찾은 전과자들이 다시 범죄환경에 노출되지 않은 덕분이기도 하리라.


비도크는 자신이 해결했거나 체험한 범죄사실을 기록한 <회상록(1829)>을 출판하는데, 이것이 히트를 쳤다. 집필에도 상당한 재능이 있었던 듯, 이전에도 특정사건 해결후기를 출판해 돈을 만졌던 비도크는 일약 유명인사로 떠오른다.


비도크는 범죄 현장의 모든 유류품을 면밀히 조사하고 기록했다. “범죄에서 독창력이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 비도크는 범인은 첫 수법이 성공하면 되풀이하는 습성이 있으므로 범죄패턴을 파악하면 범인을 잡을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리와 체계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범인의 진짜 이름, 가짜 이름, 범죄의 유형과 습성, 교우 관계 등 데이터를 체계화했다.
일부에서 비도크가 현미경을 이용했고, 지문을 확인했다는 설도 있지만 확대경 정도였고, 지문은 1880년에야 최초로 네이처에 폴즈라는 사람이 논문을 기고하면서 알려진 것이므로 근거없다.
이런 방식 덕분인지 비도크는 평생 2만명에 가까운 범죄자를 체포했다고 한다.


◇ 사건 발생 전 범죄정보 수집해 예방
르블랑이 창조한 ‘괴도 뤼팽 백작’은 그 자신이 범죄자이지만,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813의 비밀)하는 탐정하기도 하다. 빼어난 외모, 카리스마 등은 비도크와 뤼팽을 동일인물이라고 구분이 안갈 정도로 비슷하다.
비도크는 형사(detective)의 전형을 창조했다는 평가도 받는데 사건발생전 범죄정보 수집, 잠복수사, 범죄행각 탐문 등을 최초로 시도했다. 그 이전의 경찰은 길거리순찰과 사건이 발생한 이후 출동하는 것이 전부였다.


당시는 과학수사 발달 이전이라 사건 해결을 위해서는 증거와 증인에 의존해야 했다. 곳곳에 정보원을 심어두고 활용하거나, 범죄조직에 직접 접근해 상부상조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주고 받아 사건을 해결했다.


정식으로 결혼하진 않았지만 일흔이 넘어서도 젊은 여성들을 만나며 엽색행각(회상록과 간간히 들어오는 사건해결 수수료가 잡짤했다)을 즐겼다. 사후 수많은 여자들이 자신에게 유산 상속권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유산을 물려받은 건 30여년을 묵묵히 일해준 가정부였다고 한다.


비도크는 만나는 여자들마다 “그대만이 내 생애의 연인”이라며 유산을 남겨 주겠다고 말했고, 비도크의 유서를 들고 온 젊은 여자만 11명이었다고 한다.

기사입력: 2020/10/21 [09:21]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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