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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 미국, 진주만기습에 CIA 필요성 인식
초기 발족 OSS 일본패망후 해체…트루먼 CIA 부활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20/10/24 [12:57]

[김영수 잡학여행] = 일본의 진주만 기습공격으로 일격을 당한 미국은 복수를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었다. 미국의 중앙정보국(CIA Central Intelligence Authority)은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기습(1941년 12월)을 계기로 태동했다.

 

▲ 미국 CIA가 걸프전(1990~1991) 당시 이라크와 아랍주민들을 상대로 심리전에 활용한 전단지. 미국 CIA 홈페이지.     © 경기도민뉴스

 

진주만공습 이후 정보기관의 필요성을 느낀 루스벨트대통령은 2차대전 중이던 합참 산하에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를 창설(1942년 6월), 전시 비밀공작, 비정규전 조사ㆍ분석 임무를 수행했다.


2차대전 말기 독일이 항복하고도 일본은 항복하지 않고, ‘카미카제특공대’, ‘옥쇄’ 등을 내세우며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었다.


회심의 반격을 위해 준비하던 미국은 일본이 하와이 북쪽의 미드웨이제도를 노린다는 것을 첩보전을 통해 알아냈다. 일본이 미드웨이를 침공할 것이라는 첩보의 탐지는 러시아, 독일, 일본, 영국 등 수많은 스파이들이 암약하며 수행한 첩보전의 결과물 중의 하나로 미국 입장에서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OSS는 당시 일제 강점기, 중국 등지에서 힘겹게 독립운동을 하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선생과 광복군을 지원하기도 했다. 광복군 중 일부는 군사훈련도 받았으나, 임시정부가 미처 선전포고도 하기 전에 일제가 항복 선언을 하는 바람에 직접적인 전공을 세우지는 못했다.


앞서 미국은 1941년 7월에도 같은 목적을 가진 정보사무국을 구성했으나, 유야무야로 끝났다.

 

▲ CIA의 비밀장비중 하나인 소형 첩보항공기. 미국 CIA 홈페이지.     © 경기도민뉴스



OSS는 정보사무국에 있던 도노번 국장을 책임자로 지명했다. 오늘날 CIA의 발전은 모두 도노번(일명 와일드 빌)국장이 기초를 닦은 셈이다. OSS는 첩보요원을 통해 미국 작전지역에 관한 대외정보 수집ㆍ분석, 역선전ㆍ역정보 활동, 적 후방의 사보타주ㆍ건물폭파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OSS는 일본의 항복 이후 해체(1945년 10월)됐으나, 트루먼 행정부는 미소냉전 시대를 맞아 통합된 전문기관의 필요성을 인식,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중앙정보그룹과 국가정보위원회를 설립했다. 이런 가운데도 육군 해군 공군은 독자적인 정보활동을 계속했다.


CIA의 공식창설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설립안이 연방의회를 통과한 때(1947)로 본다. NSC산하에 설치된 중앙정보국(CIA)은 국가안보에 관련된 정보의 제공ㆍ자문, 정부 기관들의 정보활동 조정, 정보의 비교ㆍ평가, 정부안의 정보유통관리, 그리고 NSC가 규정하는 보안첩보임무를 수행한다.


역대 CIA국장은 그 면면에서 이채로운 인사들이 꽤 많다. 군인출신이 국장을 맡는가 하면(로스코 힐런코터, 월터 B. 스미스) 외교관(앨런 W. 덜레스)출신도 있었다. 기업경영인(존 A. 매콘)도 있었고, 조지부시 전 미국대통령은 정당출신으로 CIA국장을 거쳐 대통령에까지 이른 인물이다. 아들 부시도 미국대통령(9.11테러 당시 대통령)에 올랐다.


CIA는 관리부(DDA) 첩보부(DDI) 공작부(DDO) 과학기술부(DDS&T) 등 4개부서가 핵심으로, CIA업무의 상당부분은 공개된 자료(언론 보도 등)속에서 의미있는 정보를 간추리고 정리하고 예측하는 단조롭고 지루한 일로 알려지고 있다.


CIA는 이란 내정간섭으로 모사데크 총리를 축출하고 샤를 복위(1953)시켰고, 미국에 비우호적인 과테말라 좌익정부를 전복(1954)시키기도 했다. 실패한 공작도 꽤 있는데 쿠바 반정부 세력을 동원한 피그스만 침공(1961)이 그것이다. 1973~1974년엔 전직 요원들이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돼 위신이 실추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CIA의 부정적인 인식과 최근 대민 위신실추는 FBI가 활발한 대민 홍보활동을 벌이는 것에 비해 업무의 속성상 홍보활동이 뒤져 생긴 현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기사입력: 2020/10/24 [12:57]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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