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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 전국을 뒤흔든 다미선교회 ‘휴거’
사이비 종교 사례③ 세기말 맞물려 사회 혼란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20/11/15 [08:47]

[김영수 잡학여행] = 사이비종교의 폐해는 작게는 한 개인, 그 개인이 속한 가정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사회전체에 심각한 부작용을 끼치는 것이 문제다. 좀 오래전이기는 하지만, 사이비종교 중 사회적 파장이 전국적(외신도 한국으로 와 취재를 했었다)으로 일어난 것이 바로 다미선교회의 종말론 사건(1992년 10월28일)이었다.


다미선교회의 종말론은 세계의 종말이 다가오면 진정한 믿음을 가진 자만 휴거(携擧, 공중들림)가 일어나,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 휴거불발을 보도한 경향신문 기사.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이 휴거를 취재했고, 보도했다. 그만큼 대단한 이슈중의 하나였다.     © 경기도민뉴스



1) 정작 그날(1992년 10월28일), 아무 일도 없었다
​①1992년 10월28일, 예언의 그날이 왔다. 다미선교회 소속 전국 166개 종말론교회에는 하얀 옷(이른바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 준비한 ‘승천복’이었다)을 차려입은 신도들이 모였다. 종말론교회 주변에는 종말이 실제 일어나는지를 구경하기 위한 시민들도 모여들었다.
②경찰은 휴거가 실제 일어나지 않았을 때, 혹시나 신도들이 집단자살이라도 할까 경찰병력을 배치했다. 예언의 그 시각 자정이 왔지만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확인되지는 않지만 한 지역에서는 “형제 여러분! 우리 시간이 아니라 이스라엘 시간으로 열두시입니다!”라고 외쳤다. 역시 이스라엘 시간 자정이 되도 휴거는 일어나지 않았다.
③한국의 종말론자들이 선교한 필리핀에서도 200여명의 필리핀사람이 휴거를 기다리고 있었고, 자정이 넘어도 휴거가 일어나지 않자 설교자는 “교통체증 때문에 주님이 늦게 오고 계십니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다미선교회 부산지부에서는 신도 4~5명이 해당지부 목사의 멱살을 잡고 항의하며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당시 사건을 사진과 함께 보도한 동아일보 기사와 사진도 있다.)
④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어느 정도 사회적 파장이 가라앉은 11월 중순쯤, 당시 현장에 출동했었던 경찰관 중 한명은 나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늘로 올라가기는 개뿔~ 방바닥을 내리치고 박수치며, 찬송가 부르는데~ 허허~ 방바닥이 꺼질까 걱정했수~”

▲ 또 다른 언론의 보도. 이미 막대한 혼란을 일으키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언론이 비슷했다.     © 경기도민뉴스



2) 종말은 1992년, 정작 이장림은 1993년 만기 채권 구입
​①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는 종말론을 주장한 이장림(개명 이답게, 사람답게 살자는 의미라고 한다?)을 사기와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1992년 9월24일)했다. 검찰은 이장림이 신도 4명으로부터 6억5000만원을 갈취했고, 개인적으로 34억원을 사용한 장부를 입수했다고 구속 이유를 밝혔다. 1000만원 이상을 헌납한 신도만 30여명이었고, 일부는 전 재산까지 헌납했다는 것이 검찰의 수사결과였다.
②검찰이 이장림을 사기로 판단한 근거는 1993년 5월22일 만기 환매채권(RP, 3억원짜리)이었다. 세상의 종말이 1992년 10월28일인데, 만기는 1993년 5월22일인 환매채는 이장림을 꼼짝못하게 만든 증거중의 하나였다. 검찰은 이장림의 자택에서 수표 1억9300만원, 환매채 3억원, 미화 2만6700달러를 압수하기도 했다.
사건은 신속하게 처리, 서울형사지방법원은 이장림에게 사기죄로 징역 2년을 선고(1992년 12월4일)했고, 항소심은 징역 1년과 미화 2만6000달러 몰수를 선고(1993년 5월20일)했다.
③검찰이 예민한 종교문제를 손댄 것(1992년 8월12일)은 시한부 종말론의 확산으로 일부 신자들의 생업 포기, 전 재산 교회 헌납, 일부 청소년의 학업중단과 가출 등 심각한 사회문제로 번졌기 때문이다.
④검찰은 수사에 착수했지만, 신도들의 ‘자발적 헌납’ 주장에 진척을 보지 못하다가, 이장림이 1993년만기 환매채권을 구입한 것을 밝혀내고 사기혐의로 구속한 것이다.


▲ 이장림이 소개한 책자 ‘다가올 미래~’. 다미선교회는 여기서 따왔다고 한다.     © 경기도민뉴스

 

3) 노스트라다무스 등 세기말적 종말론 유행
​①1990년대는 이른바 Y2K,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1999년 종말을 의미한다는 등의 숱한 종말론이 쏟아져 나왔다. 이른바 세기말적 현상중의 하나인 종말론이 휩쓸면서 종말론을 내세우는 신흥종교들도 많이 탄생했다. 이장림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과 요한계시록을 근거로 휴거가 일어난다고 주장했다(1992년 10월28일 자정이라고 특정하지는 않았다).
②종말론에 대해서는 당시 언론(TV프로그램)이 시한부 종말론에 대해 다루면서 오히려 신도들이 많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미선교회의 웃픈 현실은 2020년 연말이 다 되어가는 이즈음에도 한국의 종말론 관련 종파는 최소 50개 정도다.
③1992년의 다미선교회는 휴거사건 이전까지 국내 신도 8000여명, 해외 신도 1000여명(교회측은 10만명이라고 주장)의 신도를 자랑했었다. 휴거가 불발로 끝나자, 교회를 찾아가서 난동을 부리고 화풀이를 한 신도들도 있었고, 결국 교회는 1992년 11월2일, 각 신문에 사과광고를 올리고 헌금반환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④휴거소동이 끝난 뒤 다미선교회는 11월2일 휴거소동 사과문을 발표하고 신도들의 헌금반환 신청을 11월10일까지 받기로 하면서 해체를 발표한다. 그러나 2020년 11월기준 여전히 종말과 구원을 부르짖는 다미선교회 후신으로 의심받는 종파가 매우 왕성하게 활동중이다.

▲ 다미선교회 휴거사건을 모티프로 제작했다는 영화 ‘선지자의 밤’ 포스터. 감독 김성무. 2015년 9월10일 개봉.     © 경기도민뉴스



4) 검찰, 휴거 한달전(9월24일) 이장림 구속
​①휴거 소동의 주동자 이장림은 휴거 한 달 전인 9월24일 검찰이 구속하고, 법원은 징역 1년에 2만6000달러 몰수형을 선고한다.
정작 이장림은 휴거가 언제 온다고 딱 잡아서 말한 적이 없었다. 휴거일을 못 박은 사람은 다미선교회 소속의 고등학생 신자 하방익씨였다.
②그래서인지 이장림은 “저는 이번 휴거(携擧) 대상자가 아니고 ‘환란시대’에 지상에 남아 순교해야 할 운명입니다. 그래서 활동비를 준비해 둔 것 뿐입니다. 신앙생활을 충실히 한다는 이유만으로 이 법정에 서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현실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습니다. 선교회를 설립한 이후 단 한 번도 신도들에게 헌금을 강요한 적이 없습니다. 한 신도가 아파트를 팔아 헌금을 낼 때 무작정 사양하는 것은 그의 독실한 믿음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해 임시로 보관만 했을 뿐입니다”라고 법정에서 진술한다.
③이장림은 구속됐지만 휴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이장림의 구속을 선지자에 대한 박해로 여겼다(선지자 세례 요한은 목이 잘렸고, 부활은 별도로 하고 예수 자신도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④이장림은 구속상태에서 ‘휴거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사과성명을 발표(10월25일)했지만, 헬조선의 고단한 영혼들은 다른 선지자(당시 고등학생이던 하방익)를 새로이 영입, 휴거를 확고하게 믿었다.
휴거를 맹신한 사람들은 고달프고 괴로운 현실의 탈출구가 오직 휴거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 요한계시록을 주요근거로 한 개신교계 종말론 도해.     © 경기도민뉴스



5) 휴거는 이장림이 번역하면서 만든 신조어
​①휴거의 개념은 명확한 단어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성경속의 구절에서 신의 이적(異蹟)이나, 종말의 순간 심판자가 나타나는 것을 표현하는 구절을 조합해 만든 것이다.
②휴거는 종말론과 함께 등장하는 동전의 앞 뒷면같은 것으로 대체적으로 △예수가 지상이 아닌 하늘이나 공중에 나타나고(공중재림) △신실한 크리스트교도들이 지상에서 고통(환난)을 겪지 않도록 예수가 공중에 들어올리고(휴거) △그동안 지상에서는 대혼란, 전쟁, 적그리스도의 통치, 고통(7년)이 이어지고 △지상에서의 대환난이 끝나면(지나가면) 악과의 최후 전쟁(아마겟돈)에서 믿는 자들이 승리한다 △이후 지상에는 예수와 구원받은 성도들이 다스리는 천년왕국이 된다고 주장한다.
③다미선교회가 1992년을 휴거로 지정한 것은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종말(공포의 대왕이 나타난다고 했다)을 1999년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종말의때에 예수가 재림하는데, 앞서 7년간 짐승의 지배가 있기 위해서는 1992년 10월쯤 휴거가 있어야 한다고 계산한 것이다.
④휴거는 어니스트 W. 앵글리라는 미국인 개신교 목사가 쓴 소설의 제목(Rapture)이기도 하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휴거, 휴거 후 7년의 대환난, 사탄(적그리스도)의 등장, 예수 재림 등을 다룬다.
이것을 이장림이 번역해 한국에 소개하면서 세기말의 종말론과 함께 대유행을 탔고, 일부 교단(자신을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대형교회)의 저명한 목사들도 종말과 공중들림을 설교했었다.
⑤참고로 이장림은 수학과 관련, 이그노벨상을 받는다(2011년). 수상이유는 ‘수학적 추정을 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세계에 알린 공로’였고 타이틀은 ‘세계 종말 시기를 주장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코오롱의 권혁호씨가 향기나는 정장으로 환경보호상(1999년), 문선명 통일교주가 3600만쌍 합동결혼(1960~1997년)으로 경제학상(2000년), 미 버지니아대학 재학생인 한지원씨가 커피잔을 들고 다닐 때 커피를 쏟는 현상으로 유체역학상(2017년)을 받았다.

 


6) 성경속 휴거의 증거(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주요 인용구)
​△에녹은 하나님과 함께 살다가 사라졌다. 하나님께서 데려가신 것이다(Enoch walked with God: and he was not; for God took him)(창세기5:24)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火車)와 불말(火馬)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갈라놓더니)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열왕기하2:11~12)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태복음24:29~30)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and the dead in Christ shall rise first: Then we which are alive and remain shall be caught up together with them in the clouds, to meet the Lord in the air: and so shall we ever be with the Lord)(데살로니가 전서4:16~17)
※데살로니카는 아테네 다음으로 큰 그리스 제2의 도시며, 그리스령 마케도니아 지방의 중심 도시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카의 시도들에게 보낸 두통의 편지가 바로 데살로니가 전서와 데살로니가 후서다.
편지는 본질적으로 개인적인 문안편지로 데살로니카 교회의 크리스트교인들을 격려하고 안심시키는 것이 주 목적으로 보인다. 조용히 살고, 예수 재림의 소망 안에서 살아가라는 뜻이 있다.
역시 참고로 노스트라다무스의 <모든 세기> 중 논란의 구절도 소개한다.
1999 일곱 번째 달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오리라
앙골무아의 대왕이 부활하리라
화성을 전후로 행복하게 지배하리라.
L’an mil neuf cent nonante neuf sept mois
Du ciel viendra un grand Roy d’effrayeur:
Ressusciter le grand Roy d’Angolmois,
Avant après, Mars régner par bonheur.(10:72)

 

 

7) 다미선교회 사건의 웃픈 사례들
​①철도공무원이 시한부 종말론의 설교 테이프를 열차안에서 틀다가 해직당했다. 혼자 들은 것이 아니고, 열차안의 승객에게 방송한 것이다. 이 철도공무원은 퇴직금을 종말론 교회에 헌납하고, 두 자녀를 데리고 잠적했다.
②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에서 당시 30대 주부가 중학교 1학년 아들을 데리고 경남지역에서 선교를 하겠다고 가출했다.
③부산광역시의 한 시민은 부동산 1억원을 매각해 그 돈을 종말론 교회에 헌금했다.
④대구광역시의 한 시민은 전세금 700만원을 헌금하고 교회에서 기거하며 선교활동을 했다.
⑤전라남도 강진군에서는 여고생이 부모가 종말론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했다는 이유로 음독자살(1991년 1월)했다.
⑥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동의 윤모씨와 대학생 세 아들은 모두 종말론에 빠졌다. 그 중 두 아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외국에서 순교한다며 가출했다.
⑦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에서는 어린이를 포함한 신도 10여명이 1991년 10월부터 외부와의 접촉을 끊으며 기도원에서 생활했다.

이외에도 넘쳐난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시라.

기사입력: 2020/11/15 [08:47]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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