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무영 세상만사] = 진보는 개혁이고 보수는 발전에 방점을 찍고 있다. 개혁과 발전, 어쩌면 한 몸이라 할 수도 있다. 그 한 몸을 선과 악, 옳고 그름, 좋고 나쁨, 흑과 백과 같은 이분법적인 잣대로만 본다면 결코 함께할 수가 없다.

지금 우리의 현실이 그런 좌와 우의 이분법적인 프레임에 휩싸이고 있다. 좌와 우, 흑과 백은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희석되어 버린 지 오래다. 이젠 고리타분한 그런 이념 논리가 현재의 우리 정치판을 달구고 있다.

좌와 우, 흑과 백이 발전해서 현재의 진보와 보수로 변형되어 서로 대립하게 된 것이다. 진보와 보수는 그 지향점이 민주와 국민으로 맞춰져 있다. 그런데도 본질을 외면한 채 진보와 보수의 무조건적인 대립과 갈등으로 국민을 피곤하게 하고 있다.

여당의 ‘민주’와 야당의 ‘국민’이라는 당명을 놓고 보더라도 서로 대립할 일이 전혀 없는데도 잘잘못을 따지면서 이전투구처럼 물어뜯고 있다.

현재의 정치판을 봤을 때,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승부가 뻔한 축구경기를 하는 것과 같은 형상이다. 여당은 개헌도 가능한 180여석의 거대의석을 내세워 힘을 남발하고 있고, 야당은 위축되어 힘을 움츠리고 있다. 두 집단의 지향점이 민주와 국민이면서도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행태를 보이는가 하면, 국민을 내세우면서도 과연 국민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듯 갈팡질팡하고 있다.

자유국가의 표상인 미국에도 민주당과 공화당이 양립하고 있지만, 결코 민주주의를 저버리거나 국민을 무시하지도 않는다.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면서도, 부정투표라고 항의하면서도,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면서 진보를 자처하는 민주당이 승리했다. 그들에게도 당론이 있고 지향점이 분명히 있겠지만, 우리처럼 “나는 선하고 너는 악하다”라는 이분법적인 행태는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이념적으로는 서로 대립하고 있지만, 나라를 위하고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에는 뜻을 함께하고 있다.

무릇, 이념적인 사상이 아무리 분명해도, 그 자체가 국민 대다수의 원함에 반하는 삐뚤어진 사상이라면 재고할 여지가 있다. 물론 현재의 그들이 처한 여러가지 상황으로 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하겠지만, 군사정권에서 목숨 걸고 외치던 민주화가 실현된 지 20여 년이 흐른 현재에도 당시의 사상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그들의 지향점이 국민이 아닌 자신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과거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걸었고, 민주화가 성숙한 중간에 광우병 파동 촛불로 정부에 불신을 표했고, 현 정부를 태동시킨 소위 촛불혁명은 지난 정부에 대한 불신과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물론 정권 연장에 대한 집착과 노력을 인정해야 하겠지만, 지금과 같이 민생을 소홀히 한 채 일부 강경파에 의해 국정이 좌지우지되는 현실이 우리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독주한다면, 대다수의 국민들이 언제 어느 때 제동을 걸지 모를 일이다.

과거 민주화 운동 때는 군사정권에서 민주정권으로 가기 위하여 형성된 소위 운동권이 중심이었고, 광우병 파동과 촛불혁명은 그들이 선동을 위한 행사의 주체는 됐지만, 궁극적으로는 국민 대다수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졌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당시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운동권이 당ㆍ정ㆍ청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가 들어오면서 자기 스스로 무너졌다. 19세기는 좌파와 우파 중 하나만 남으라는 절대주의 사회였고, 20세기 중반에는 진보와 보수가 경쟁하며 같이 살아가는 상대주의 사회가 됐다. 앞으로는 종교와 민족이 서로 달라도 여럿이 함께 사는 사회, 즉 더불어 사는 다원주의 사회로 전환될 것이다. 과거 권력사회를 지향한 군사정권을 답습하지 말고 국민과 민주주의를 생각하면서 대립이 아니라 선의의 경쟁을 통해 국민을 위하고 국가발전에 이바지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곧 다원주의 사회에서 공존할 수 있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최무영 (이학박사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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